블로그 프로젝트 - 블로그를 하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를 버리다.

음악 앱 프로젝트를 성공하고, 나는 [학습 주도 개발]이 어느 정도 통한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고 다음 프로젝트를 하려 했다. 이제 취직도 해야 하고, 이번 기회에 웹 개발을 진득하게 해 보려고 블로그를 만들어 볼까 했다.

하지만 바로 컴 켜고 걸터앉아서 코딩하기 전에.. 생각을 좀 해봤다. 인생은 짧고^[1] 만들 것은 많다. 블로그는 정말로 내가 할 만한 프로젝트일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을까? 네이버 블로그를 쓰던 때에도 언젠가는 나만의 블로그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2]...

이번 기회에 나에게 있어 블로깅의 의미와 하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문제가 주어지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어서 먹어치우다 다 못먹고 남기는 애송이 시절은 지나갔으니까.

애초에,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왜 했던걸까? 뭐가 그리 재밌어서 2021년에는 56개, 2020년에는 무려 278개의 포스트를 썼을까?

블로그를 했던 이유

^{시바.. 똥글 싸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싸는 거지!!}
블로그는 솔직히 그냥 취미다. 왜 하냐니.. 그냥 꼴리니까 하는거지..!

과거 블로그 글들을 보면, 사실 대다수의 글에는 댓글이 없다.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는데 수없이 많은 글을 싸놨다.

^[3] 뭐지? 나 정신병자였나? ㅋㅋ

마지막 수능을 끝냈을 때부터 근 [7~8년을 혼자 골방에서 프로그래밍]만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개발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갖는 함수형 패러다임이나 근로저 팔이, 파이썬에 대가리 깨진 거 등등 하고 싶은 말 정말 많은데 이런 걸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학부 때도 없었고, 대학원 선후배님들은 제품 개발보다는 알고리즘 연구에 집중하는 사람들이었다. 개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발산하고자 하는 욕구가 블로그에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거의 모든 걸 다 적었기 때문에 양이 뻥튀기 된 점도 있다. 지금은 그날 배운 것들이나 프로그래밍 실수, 각종 툴을 써보고 만든 메뉴얼 등은 [Zettelkasten] 방법론을 적용하여 나만의 지식 저장소에 따로 관리한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글만 쓴다.
그런데 과거 블로그에는 이런 것들이 구분 없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20년도의 278개 폭주는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별 쓸모없는) 나만 보는 글로 채워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블로그를 하는 이유

지금까지는 내가 블로그를 "했던" 이유였다. 이제는 일반적으로도 블로그를 하는 이유를 더 생각해 보자.

블로깅은 결국 불특정 다수에게 내 생각을 알리는 행위다.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하면 무엇이 좋을까?

• 그냥 재밌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건 원래 그냥 재미있는 일이다. 관심있는 주제에 대한 대화는 원래 즐겁다. 오래된 블로그 글을 보면 과거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
• 독자들과 토론: 반박을 할 수도 있고, 더 풍부하게 뒷받침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고 내 생각을 점검하는 것이 가능하다.
• 개인의 브랜드화: 글을 통해 정제된 방식으로 대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리기 매우 쉽다.
• 유저와의 소통창구: 어떤 제품을 왜 만들었는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유저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 사실 지금 이 글도 그런 것의 일종이다.
• 취직용 포트폴리오 <- 개인 브랜드, 소통창구: 자신의 생각이 많이 드러난 블로그가 있다면, 면접관은 면접이 아니라 블로그만 읽어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알 수 있고 자기들과 일하기에 적합한지도 알 수 있다.
  또한 블로그에서 포폴용 제품을 설명한다면, 단순히 코드만 있는 포폴이 아니라 제품이 만들어지는 컨텍스트와 만든 이유,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지금 이 글이 하고 있는 거다!

블로그를 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어떤 CTO의 블로그에서 본 바로는, 잘 쓴 기술 블로그는 심지어 채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좋다. 그럼 블로그는 계속 하기로 하자. 사실 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라 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냥 뭐가 좋은지 생각 좀 해본 거다. 솔직히 답정너인 것 인정한다..

기존 네이버 블로그를 갖다 버리는 이유

그런데 블로그를 만들 이유는 없지 않나? 잘 쓰던 네이버 블로그가 있잖은가? 정말로 인생이 부족하다면 이걸 그대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답은 아니다이다. 다른 서비스라면 몰라도
네이버 블로그만큼은 당장 버려야 한다

아마 다들 아는 뻔한 이야기겠지만
직접 당한 사람 입에서 나온다면 그건 각별할 것이다.

SEO가 썩창

어지간히 유명한 글이 아닌 이상 절대로 구글 검색에 뜨지 않는다

이게 제일 심각한 문제다.

• 과거 블로그에서 가장 유명하고 조회수가 높은 글(6674)은 식질머신 0.1.1 꿀팁인데, 이 글은 그나마 구글에 "식질머신"을 검색하면 뜬다.
• 하지만 아마 두번째로 유명하리라 생각하는 글 한국 교육의 문제점(옮긴 글)은.. 조회수가 5454지만 구글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 그리고 아마도 내가 디시 프로그래밍 갤러리에서 처음 바이럴을 일으켰다고 생각되는 CS:APP 열풍도.. 관련 포스트들(옮긴 글)이 구글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이건 진짜 심각한데, 디시 게시글은 구글에서 검색이 되는데 네이버 블로그 포스트는 안 된다.

믿기 힘들겠지만 네이버는 한 때 구글과 검색으로 경쟁하는 기업이었다. 엌ㅋㅋㅋ 그러니 구글이 네이버 블로그 글을 크롤링하지 못하게 하는 건 사실 당연하다. 에휴.. 그래서 돈 좀 벌었냐?
오히려 "식질머신 꿀팁" 글은 어떻게 네이버의 방해를 뚫고 구글 색인에 박힌건지가 더 궁금하다. 어케했노

개인적으로 CS:APP 바이럴 블로그 포스트가 묻힌 게 참 아쉽다. 네이버 블로그가 구글 검색이 됐더라면, CS:APP 검색 시 내 블로그가 상단에 뜨게 되고, 독자들이 더 늘었을텐데.
바이럴의 진원지가 내가 쓴 글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참 아깝다. 티스토리나 이글루스였다면.. 어쩌면 굳이 블로그를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통계가 영 별로다

위에서도 밝혔다시피 내 블로그 최다 조회수는 결국 구글 검색으로 들어온 사람들로부터 나오는데, 네이버가 제공하는 통계로는 구글에서 어떤 걸 검색해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거야 뭐 어쩔 수 없다 쳐도, 진짜 문제가 되는 건 구글 아날리틱도 못붙이게 한다는 점이다. 빼애액!

에디터가 구데기

모바일에서 수정이 불가능한 구버전 에디터(2.0)

네이버 블로그 2.0 에디터는 다 좋은데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모바일 시대가 오기 전에 만들어져서 그런지, 데스크탑에서 쓴 글은 모바일에서는 제목과 공개 범위 정도만 수정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이버도 새로운 에디터를 내나 싶더니...

유저를 개돼지로 보는 쌉구린 3.0 에디터 강요

어째 새 버전은 더 구려졌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새로운 기능 그딴 것보다 되던 게 안 되는 게 가장 빡치는 법이다. 새 에디터는 구버전에서는 잘만 되는 html도 못 쓰고, 메모 게시판도 사라지고 과거 임시 저장글도 없애버리고 요약글 기능도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추가했다는 코드 하이라이팅은 언어 지정도 못한다. 이건 뭐 유저를 개돼지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그 외에도 수많은 부분이 아니꼬왔는지 나 말고도 쌍욕 박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처먹은 네이버 블로그 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는 결국 2.0 에디터를 없애버린다. 이걸로 꼬접한 블로거들이 정말 많았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하나고.

그리고 데탑에서 2.0으로 쓴 포스트는 여전히 모바일에서 수정이 안 된다. 3.0으로 쓴 포스트는 모바일에서도 수정이 되지만.. 나는 그걸로 쓴 포스트가 거의 없다. 3.0은 대체 왜 만든 걸까....

2.0 에디터가 사라진 지금, 거지 같은 에디터를 꾹 참고 쓰기보다 그냥 런하기로 했다.

결국 남의 서비스

웹 서비스가 보통 다 그렇지만, 네이버 블로그도 내 데이터를 직접 관리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외에도 문제가 있다.

백업이 힘듬

이번에 옮기면서 당한건데, 네이버 블로그는 포스트 일괄 다운로드를 하는 손쉬운 방법이 없다. 포스트를 pdf로 저장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4], 600개나 되는 포스트를 클릭 몇번으로 간단히 전부 받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공식적인 글쓰기 api 없음

네이버는 한 때 블로그 글쓰기 api를 냈다가 빤스런했다. 아마 쓰레기 블로그 스패밍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던 거겠지만.. 아무튼 파일을 따로 관리하면서 네이버에도 포스팅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론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를 갖다 버리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기 전까지 글 쓰고 살 듯한데,
이런 썩창에다가 애지중지하는 글들을 묻어둘 수야 없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 티스토리나 깃헙io로 옮겼을까?
물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어쩌다 블로그를 하려다 아예 웹사이트를 만들어 버렸을까? 고것은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자.

Disclaimer: 사실 네이버 블로그도 내수용으로만 쓴다면 훌륭한 서비스다. 실제로 김치국만큼은 꽉 잡고 있기도 하고.. 본문에서는 마구 까댔지만 돈 잘 벌면 된거지 뭐.. 나는 그냥 내가 하려는 일이나 쓰는 글의 성격에 안 맞으니까 딴 거 쓰러가는 것 뿐이다.